고려 전기, 후기, 외교 등을 알아보자.
(고려 시기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조선에 비해 높았으며
남녀 균등 상속, 서류부가혼, 자유로운 재혼, 외가음서 등이 있다.)
고려 전기
태조
고려 초대 왕.
후삼국 통일 후 민생안정을 위해 조세를 10분의 1로 낮추고 흑창을 설치해 빈민을 구제했다.
여러 호족들과 혼인하고 왕의 성씨를 나눠주는 사성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한 왕건의 부인은 29명이나 된다고 한다.
통일 공신과 관료들에게 공로에 따라 수조권을 지급하는 역분전 제도를 시행했다.
중앙의 고관이 본인의 출신지의 안정을 책임지게 하며 반란 발생 시
고관의 책임을 묻는 연좌제 성격의 사심관 제도를 시행했다.
지방의 향리의 자제를 수도에 머물게 하여 인질로 삼는 기인 제도를 시행했다.
북진 정책을 시행했으며 영흥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발해유민들을 수용했다.
훈요 10조를 남기고 서경을 중시했다.
<정계>, <계백료서> 등의 교훈서가 있다.
정종
고려 3대 왕.
개경의 동∙서에 빈민과 병자를 치료하기 위한 동서대비원을 설치했다.
광종
고려 4대 왕.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이들을 다시 양인을 해방하는 노비안검법을 시행했다.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시행한다.
이후 반발하는 호족들을 숙청하며 왕권을 강화했다.
관료의 복장을 등급별로 정해 기강을 확립한다.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광덕, 중풍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
빈민 구제와 병자를 치료 하기 위해 제위보를 설립한다.
균여가 활동했으며 화엄경의 핵심 사상인 보현십원가를 짓는다.
경종
고려 5대 왕.
인품과 관품을 고려해 관리들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는 시정 전시과를 시행했다.
성종
고려 6대 왕.
6두품 출신 유학자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수용한다.
연등회를 줄이고 팔관회를 금지한다.
국립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설립한다.
유학부와 기술학부가 있다.
지방에 교육 강화를 위해 향교를 설립한다.
2성6부, 중추원, 삼사 등을 설치해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를 구축한다.
고려 시대의 삼사는 회계만 담당하고 언론은 담당하지 않는다.
국제 무역항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벽란도를 통해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류했다.
이 시기 고려(COREA)라고 부르며 서양에 알려진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가 만들어진다.
흑창이 의창으로 개편된다.
당나라 영향
2성6부
중서문하성(문하시중) - 재신(2품 이상) : 심의 담당
- 낭사(3품 이하) : 언론 담당
상서성 - 6부(이부, 호부, 예부, 병부, 형부, 공부)
송나라 영향
중추원
추민(2품 이상) : 군국기무
승선(3품) : 비서
어사대
감찰 담당
삼사
회계 담당
재신과 추민이 만나 회의하는 재추회의(도병마사)가 있다.
임시였다가 후에 상설로 바뀐다.
전국의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한다.
5도 양계
5도
일반 행정 구역이다.
조세와 징발 등을 담당한다.
안찰사를 파견해 도내, 군, 현을 순찰했다.
양계
국경 지역(북계, 동계)의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적 성격의 행정 구역이다.
병마사를 파견해 군권과 민정을 동시에 담당했다.
문벌귀족 사회이다.
목종
고려 7대 왕.
인품을 제외하고 관품만을 기준으로 하는 개정 전시과 제도를 시행했다.
문종
고려 11대 왕.
토지 부족으로 인해 이전, 전∙현직에게 지급되던 수조권을
현직에게만 지급하는 경정 전시과 제도를 시행한다.
개경에 12개의 대표적인 사립 교육 기관인 사학 12도를 설립한다.
이 중 하나가 최충이 설립한 9재 학당이다.
의천
문종의 넷째 아들
천태종을 개창한다.
교관겸수를 제창한다.
숙종
고려 15대 왕.
화폐 유통을 적극 추진하며 활구(은병)과 해동통보를 제작한다.
화폐 주조를 위해 주전도감을 설치한다.
예종
고려 16대 왕.
빈민과 서민의 질병을 치료와 무료 시약을 담당한 혜민국을 설립했다.
병자 치료 및 사망자 매장과 유골 수습을 위해 구제도감을 설치한다.
국자감 내에 7개의 전문 7재와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한다.
고려 후기
인종
고려 17대 왕.
김부식이 왕명을 받아 한국 최고의 정사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한다.
문벌 귀족 출신 이자겸이 척준경과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인
이자겸의 난이 일어났다.
묘청, 정지상 등의 서경 세력이 풍수지리설(서경길지설)등을 근거로 개경의 문벌귀족 사회를 비판한다.
수도를 서경으로 옮겨 금나라를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주적 혁신 운동인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 일어났다.
허나 개경 세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
훗날 조선의 신채호는 이 사건을
'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칭한다.
연회에서 김부식의 아들, 젊은 문신 김돈중이 장교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항의한 정중부는 위협을 받으나 김돈중은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의종
고려 18대 왕.
고려 수박대회(무술대회)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이소응 대장군의 뺨을 젊은 문신 한뢰가 때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이소응은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기에 대회 참여가 어려운건 당연했다.
허나 그런 이를 한뢰가 때리고 다른 의종과 문신들이 비웃자 김돈중과 정중부 사태부터 쌓여온
무신들의 인내가 폭발하며 무신정변을 일으킨다.
요세가 백련사에서 백련결사 운동을 주도하고 법화신앙을 강조한다.
명종
고려 19대 왕.
무신정권 초기 사회적 혼란이 심해 각종 저항과 반란이 일어난다.
김보당의 난 - 무신정변에 대한 반발로 반란을 일으킨다(개경).
조위총의 난 - 무신정변에 대한 반발로 반란을 일으킨다(서경).
망이∙망소이의 난 -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며 향, 부곡, 소민의 신분 해방 운동 성격을 띄는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중 봉기이다.
김사미∙효심의 난 - 무신정권의 수탈에 저항하며 신라 부흥을 표방하였고
경상도의 운문, 초전에서 일으킨 대규모 농민 봉기이다.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등을 저술한다.
지눌이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를 제창한다(선교통합).
수선사 결사 운동으로 타락한 불교계를 비판한다.
신종
고려 20대 왕.
만적의 난 - 신분 해방을 위해 일어난 노비 저항이다(개경).
무신정변
1170년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문신 위주의 정치와 무관 차별에 반발하여 일으킨 쿠데타다.
이후 무신정권 시대가 약 100년간 지속된다.
무신들의 회의기구인 중방이 최고 권력을 갖게 된다.
무신정권
경대승
무신정권 3대 집권자.
신변 보호를 위해 사병 결사대인 도방을 설치한다.
이의민
무신정권 4대 집권자.
도방이 해체된다.
최충헌
무신정권 5대 집권자.
최씨 세습 정권의 기틀을 닦는다.
국가 중요 현안을 처리하고 인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교정도감을 설치한다.
명종에게 시정 개혁안인 봉사 10조를 올린다.
도방을 다시 강화한다.
명종과 희종을 폐위 시키는 등 왕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졌다.
최우
무신정권 6대 집권자.
정방을 설치해 문무백관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야별초를 조직해 야간 순찰과 치안을 유지한다.
이후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으로 구성된 삼별초로 발전시킨다.
문한(문신) 담당기관 서방을 세웠다.
고려(외교) 파트에서 서술하겠지만 팔만대장경 간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고종
고려 23대 왕.
기근과 전염병 발생 시 긴급 구휼과 의료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구급도감을 설치한다.
승려 각훈이 왕명을 받아 한국 최고 고승 전기집인 <해동고승전>을 편찬한다.
혜심의 유불일치설이 있다.
충렬왕
고려 25대 왕.
일연의 <삼국유사>가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달리 많은 야사를 담고 있다.
고려 말(충렬왕 혹은 충정왕) 이암이 원나라에서 들여온 <농상집요>로 남부 일부에서 시행됐다.
안향이 원나라 유학 후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도입한다.
이승휴가 역사시 <제왕운기>를 저술했다.
공민왕
고려 31대 왕.
문익점이 원나라 붓대롱에 목화씨를 숨겨 들여와
경남 산청에서 시험 재배를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목화 번식을 하게 된다.
고려 말(여말선초 시기 추정) 중국어 학습을 위한 교본인 <노걸대>가 있었다.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탈취한 토지와 노비를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양인으로 환원시킨다.
성리학을 갖춘 신진사대부를 육성한다.
고려 외교
고려는 개국이래 끊임없는 외침을 받았던 나라이다.
10 ~ 11세기
거란(요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호족의 시대.
1차 침입
정종
거란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30만 규모의 지방 예비군인 광군을 조직한다.
성종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송나라와 관계를 끊는 조건으로 거란의 소손녕 장군과 합의한다.
거란의 대군이 물러나며 싸우지 않고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2차 침입
목종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와위에 세우려 하자 강조가 현종을 왕위에 세우기 위해
김치양 일파를 숙청하고 목종을 폐위 시키는 강조의 정변이 일어났다.
거란이 이를 계기로 침입을 한다.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란한다.
양규 장군이 흥화진 방어 및 약 3만명의 포로 구출을 하며 거란군을 퇴각시킨다.
현종
개경이 함락되니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초조대장경을 제작했다.
3차 침입
현종
낙성대에서 태어난 강감찬이 귀주 벌판에서 10만 거란 대군을 섬멸한 귀주대첩이 있다.
대규모 외성인 나성을 쌓았다.
덕종
3차에 걸친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유소의 주도 하에 압록강에서 동해안까지 천리장성을 축조한다.
12세기
여진(금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문벌귀족의 시대.
숙종
윤관이 여진족의 기병에 맞서기 위해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된 별무반을 창설했다.
이자겸과 척준경의 주도로 금나라의 사대 요구를 수용하며 군신 관계를 맺는다.
13세기
몽골(원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무신의 시대
1차 침입
고종
몽골의 사신 저고여가 피살되자 살리타 장군이 3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한다.
박서가 귀주성에서 선전하나 개경이 포위되자 화친을 맺는다.
최우는 장기 항전을 위해 강화도로 천도한다.
2차 침입
고종
살리타 장군이 고려로 재침입을 하나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하며 끝이 난다.
충주에 있는 다인철소 주민들이 맹렬히 항전 끝에 몽골군을 물리친다.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다시 한번 막고자 대장도감에서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만든다.
원종
배중손이 삼별초(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을 이끌고
원종의 개경 환도 명령에 반발한다.
진도(용장성)로 근거지를 옮긴 후 고려 정부와 단절된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한다.
배중손 전사 후 뒤를 이은 김통정이 진도에서 삼별초를 지휘한다.
진도가 함락하자 세력들과 탐라(제주도)로 이동한다.
제주도에서 항파두리 성을 쌓고 탐라가 함락될 때까지 여몽연합군에 저항한다.
이후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며 원 간섭기를 겪게 된다.
고려 왕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국이 되며 고려 왕 이름에 '충(忠)' 자를 붙인다.
이 시기 황룡사 9층 목탑, 초조대장경 등의 문화재가 소실된다.
원 간섭기
권문세족의 시대
정동행성(이문소), 다루가치를 설치하여 고려를 간섭한다.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를 설치하며 고려의 영토를 지배한다.
공녀, 매, 은, 금, 인삼 등의 특산물을 바칠 것을 수시로 요구했다.
이 시기 공녀(어린 여성) 즉, 본인의 딸을 내주지 않기 위해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조혼이 많이 이루어진다.
변발, 호복, 소주, 족두리 등의 몽골 풍습이 유행한다.
도병마사를 도평의사사로 개칭한다.
원 간섭기 말기
원나라의 국력이 약해지며 자주적인 정세가 조성 된다.
공민왕
친원파 권문세족을 숙청한다.
쌍성총관부를 탈환하고 정방을 폐지한다.
원나라 풍습(변발, 호복 등)을 없앤다.
이러한 개혁을 주도하던 신돈과 공민왕이 암살당하며 끝이 난다.
14세기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우왕
최영 장군의 홍산대첩(충남 부여)에서 고려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한다.
진포대첩(군산)에서 최무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화약과 화포(화통도감)로 왜구의 선박 500여척을 궤멸시킨다.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이다.
진포대첩의 여파로 왜군이 내륙으로 들어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을 휩쓴다.
황산대첩에서 이성계가 왜군을 물리치며 고려 최고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에 반발하며 요동 정벌을 추진해 이동하던 이성계가 4불가론을 내세우며
위화도 회군을 감행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다.
고려 시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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